오늘 이 주일 아침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께 예배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세상은 기독교인,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기독교에 대해 개독교라고 말하며 비판할 때 “너희는 믿기만 하면 다 구원받는다고 말하는데 예수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다 끝이냐!”라고 비난합니다. 그들이 이렇게 비난하는 말의 맥락에는 ‘너무 쉽다! 믿음만 강조하고 삶은 따라오지 못하면서 믿으면 끝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 무책임해 보인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 가운데서도 믿음을 오해하여 마치 “믿음”이 무슨 훈장이나 공로인 듯 이야기하는 때도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갈라디아서 2:12에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들이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라고 말씀합니다. 안디옥교회를 방문한 게바가 이방인들 다시 말해 유대인 배경이 아닌 안디옥교회 성도들과 함께 식사하던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곳 안디옥교회에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때, 베드로는 그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자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그 할례자들 곧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베드로가 그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식사의 자리를 떠났을 때 남은 유대인들도 베드로를 따라 그 자리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그토록 바울에게 중요한 문제이냐면, 이방인들을 위해 사도로 부름을 받은 바울의 사역을 전부 부정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이방인들에 대한 선교의 문이 막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진정으로 교회의 일원으로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할례와 정결법과 안식일 등 절기 등을 잘 지켜야 비로소 완전한 그리스도인으로 구원을 받는 것처럼 생각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베드로 자신도 정결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방인 안디옥교회 성도들에게 할례를 행하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을 바울이 베드로에게 지적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의롭게 된 것이 예수그리스도의 믿음 때문인가요? 아니면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서 의롭게 되었나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저는 우리가 의롭다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인정받는 것은 우리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믿음” 때문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수님을 잘 알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우리는, 과연 세상의 기독교를 욕하고 예수를 알지 못하는 이들과 무엇이 그렇게 다르고 그들보다 나은 것이 정말 무엇인가요? 저는 오늘 그 예수그리스도께 예배드리는 이 자리에서 진실로 겸손하게 저와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정말 그들보다 나은가요?” 그래서 그들과는 함께 식사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들과 우리는 구별된 존재인가요? 우리는 은혜로 이곳에 있습니다. 그 은혜가 없으니까, 그 은혜를 잊어버리니까 내가 무언가 한 것 같고 내가 무언가 된 것 같습니다. 심지어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나의 인생의 주인으로 믿어 드린 것’같은 착각마저 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이 우리를 의롭게 해줄 수 있다는 생각도 스스로 율법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도 버렸습니다. 그리고 오직 십자가에 그리스도에게만 그의 남은 인생을 맡겼던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예배드리는 우리의 믿음이 바울의 믿음보다 더 나은 것이 없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습니다. 우리의 의가 결코 세상에 예수를 믿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을 욕하는 이들보다 낫지 않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와 그들의 차이는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뿐임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고백할 때 비로소 거기서부터 믿음 안에 사는 인생이 시작인 것을 알기 바랍니다. 진실로 진실로 우리가 오직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갈 때 그런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작정한 태신자를 우리의 가족을 우리의 자녀를 우리의 배우자를 하나님 곁으로 이끄실 것입니다.